[북향민 사업이야기]북향민기업 탐방 이동인·한민족밀알공동체 대표

2019-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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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향민기업 탐방 이동인·한민족 밀알공동체 대표

‘한민족밀알공동체’로 통일을 준비합니다.

지난 3월 중순경, 경기도 여주에서 특별한 양계장 사업을 하는 남남북녀 사업가 부부를 찾아 나섰다. 실은 이 부부와는 안면이 있다. 남편 이동인 목사와의 인연은 15년 정도 된다. 이동인 목사가 북녀 이미려 씨를 만나 새 삶을 시작한 지 어언 10여년, 슬하에는 두 딸을 두고 있다. 그리고 10년간 다이나믹한 공동체 삶을 살고 있다. 창밖으로 아름다운 농촌의 자연풍경과 하루가 저물어가는 붉은 빛 하늘을 감상하며 목적지에 도착했다. 두 분의 환대와 함께 저녁 식사부터 하게 되었다. 사모님의 음식솜씨는 일품이었다. 고향의 추억을 부르는 맛의 다양한 반찬들… 결국 나는 과식하고 말았다. 이 부부는 어떻게 농촌으로 왔으며 공동체를 사는 것일까? 가슴 뛰는 이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취재 | 박예영 이사장


Q. 두 분은 어떻게 오늘과 같은 사업을 하게되셨는지요? 계기가 있으셨나요?

결혼을 한 후 2008년 수원에서 전국에 네 개 밖에 안 되는 ‘쉼터’를 운영하게 되었어요. 수십 명이 있었죠. 북향민들이 하나원에서 나오자마자 국가에서 배정받은 집을 받을 때까지 임시로 거처하는 곳이니까 많이들 왔다가 가곤 하죠. 쉼터운영을 하면서 북향민들의 아픔도, 상처도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계기가 되어 2010년 ‘한민족밀알공동체’를 발족하고 양평에서 살게 되었어요.

Q. 한민족밀알공동체의 삶은 어땠나요?

신기한 것은 이 사람들이 배정받은 집에 갔다가 거의 다시 돌아오는 거예요. 북에서 살았을 때의 가정배경은 서로 다른데 공동체 삶을 학교보다 더 빨리 배우더라고요. 여기 공동체에서 몇 달 살다가 회사에 취직하면 반장이 되든 팀장이 되든 뭐든 잘 하는거예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그렇게 돈을 벌어서 농사를 하러 오겠다고 하더라고요. 여튼 저는 목사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상처가 많은 이들을 치유하려는 마음도 있었고 공동체가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북향민들이 사회체험이 너무 없다보니 모두 외로워하고 고독해하더라구요. 사회체험과 고독을 농촌의 자연을 통해 누리게 해주자 하는 마음으로 하게 된거죠. 내가 목사다보니 경영을 잘 몰라서 어려움이 많았어요. 하지만 결국 이 공동체 안에 일어나는 수많은 갈등과 부딪힘과 경험을 통해서 많이들 성장했어요. 처음에는 농사 목적이 아니었는데 농촌에 오니까 농촌이 정말 중요하고 우리나라 선교 독립의 역사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것을 알게 되었어요.

Q. 그렇다면 농사를 지으셨는데, 어떻게 양계장 사업으로 전환이 되셨나요?

일단 먹고 살기 위해서였죠. 다른 비닐하우스 농사는 단기적이고, 양계장은 사계절 할 수 있어요. 양계장 사업은 2016년부터 하게되었어요. 저는 이 사업을 하기 위해서 6년간 지켜보았고 양계장을 하면서 큰 꿈, 전국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꿈이 생겼어요. 지금한국의 계란유통시스템이 잘못 되었어요. 나쁜 것들을 국민들이 먹게 되어있고 농민들은 죽어라 일하는 구조예요. 100원 주고 사먹던 것을 500원주고 사먹어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청계중심으로 질 좋은 청란을 생산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Q. 사업과 공동체를 운영하면서 가장 어려운것은 무엇이었나요?

목사가 이런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해 목사들이나 교계로부터 이해를 받지 못한 부분이 제일어려웠어요. 공동체사역, 파견사역을 잘 인정해주지 않아요. 후원하던 곳들도 끊기고 그러다보니 자금난이 더욱 어려웠죠. 북향민들과는 공동체로 살면서 월급을 제공해줘야 하는데, 그걸 못하니까 다 떠나갈 수밖에 없었어요.


Q. 사업과 공동체를 운영하면서 가장 보람이있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아내가 북한에서 고생이라는 것을 모르고 산사람이예요. 그런데 공동체의 소중함을 잘 알고 행복해해요. 대부분은 돈을 먼저 따지고 선교적 마인드가 부족하거든요. 아내가 행복해하는 것처럼 많은 이들이 와서 경험하고 체험해서 가치관이 바뀌어 통일의 사람으로 만들어져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우리 아내부터 여주의 사람들, 찾아오는 선후배들 등 조금씩 그런 맛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 보람이죠.많은 곳에서 찾아오고 있어요. 지난해에도 한 200여명이 다녀갔어요. 성공보다는 찾아온 이들이 나를 목사로 불러주고 존중해주는 것, 그것이 보람인 것 같아요.

Q. 사모님이 꿈꾸셨던 삶, 그리고 현재의 삶에 대한 소감을 나눠주세요. 무엇이 제일 힘드셨고, 좋으셨고, 또 앞으로 바라는 점은 무엇인지요?

저는 원래 목사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한국에 와서 도우며 사는 기독교의 삶이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힘든 부분이 있었다면 목사님은 종종 ‘제가 북한 사람이기 때문에’라는 편견을 갖고 계시는 것이었어요. 제가 지향하는 것은 아름다운 사회, 아무 욕심 없이 사는 거예요. 북한에서도 정말욕심 없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았거든요. 그래서인지 신앙 안에서 기쁨을 나누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이 함께 사는 공동체를 원했어요. 양평에서 공동체로 살 때 북한남성들만 열 명 넘게 모여 살았는데, 뭘 원하느냐고 물어보니까 모여 사는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여기서 정말 치고 받고 싸우기도 하지만 그러다가 같이 웃고 떠들고… 그렇게 사는 게 너무 좋았고 정말 화목하게 살았어요. 자연스럽게 기도하니 신앙도 생기고 좋은 면들이 많았죠. 그런데 문제는 이 사람들이 일을 하는데, 페이를 못하니까 다 나가게 되었고 다시 모이자고 얘기도 했어요. 그때는 모두 싱글이었는데 지금은 신학교도 가고 가정도 꾸리고 지금도 계속 오가고 전화도 하면서 우리가 자리 잡으면 오겠다고도 해요. 실제로 지금도 친정집처럼 오가고 있어요.

Q. 앞으로 이 사업을 통해 바라는 것이나 포부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통일이 되기 전에 국경마을부터 500마리씩 갖다 주고 교회나 작은 기업에서 후원받고 마을마다 지원해주는 사업을 하려고 합니다. 나중에 이 사람들이 마을공동체로 살면서 유기농 닭알 사업으로 먹고사는, 덴마크 같은 공동체가 형성될 것을 기대하고 있어요. 꾸준히 올해부터 준비하면서 하려고 합니다. 저희는 우선 여기 북향민들부터 시작하려고 합니다. 500마리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거든요. 저희는 앞으로 유통을 담당하고 ‘남한가정, 북한가정’ 이렇게 두 가정이 하나의 작업장을 만들게 되면 충분히 사업을 할 수 있어요. 삶의 구체적인 표현은 ‘고향마을’을 꾸리는 것입니다. 우리랑 친하던 사람들이 다시 찾아와서 함께 살 수 있는 ‘어머니 집’ 같은 것을 마련하는 것이죠.

Q. 마지막으로 이 사업을 하기 원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앞으로 북향민들이 이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초기에 사업을 꾸준히 해서 신용을 얻어야 해요. 교육도 제대로 받고 공동체에서 같이 부대끼며 살면서 근성을 키워야 합니다. 멀리 내다봐야해요. 그래야 앞으로 사업에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흙투성이 남편 이동인 목사, 화장기 없는 순전한 이미려 사모님 두 분의 삶과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새 깊은 밤이 되었다. 두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살아있는 ‘삶의 공동체’가 어느새 내 영혼에도 이입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이 분들이 사는 삶이야말로 요즘 우리가 고생하고 있는 환경을 지키는 일이요, 지구를 살리는 일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아니겠는가?! 곧 우리 통일쿱에서도 이 두 분이 생산하시는 건강하고 맛있는 유기농 청란을 맛볼 수 있다.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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